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민음사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살아간다는 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구나.
욕심이 나는 거구나.
얼떨떨한 상태에서 오래된 옴잡이의 마음이 점점 어려졌다.
얼마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보건교사 안은영'이 화제가 되어 더 유명해진 원작.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이제서야 읽었네요.
5년 전 출간된 소설이지만 소재가 좀 어이없었달까...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리커버 특별판이 너무 예쁘고 넷플릭스에서 유명세를 타서 일단 궁금해 구입해 보았지요.
핸드백 속에 비비탄총과 무지개색 늘어나는 깔대기형 장난감 칼을 넣어 다니는 멀쩡해 보이지만 멀쩡하지 않은 30대 여성. 안은영의 이야기입니다.
안은영은 M고등학교의 보건교사입니다. 은영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보건교사는 본업, 일종의 퇴마사는 부업이죠. 보상이 주어지는 부업은 아니에요. 그건 은영이 세상에 베푸는 친절함입니다.
또 다른 인물 홍인표.
인표는 M고등학교 설립자 집안의 손자로 금수저죠. 어릴 때 사고를 치고 다리를 절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선생님이 되어 학교를 지킵니다.
M고에 부임한 은영은 부임한 첫날부터 이 학교는 뭔가 있다고 느낍니다.
어느 날 2학년 승권의 목에서 가시 같은 뾰족한 무언가를 떼어냅니다. 여기저기 조사하고 다니던 은영은 1년에 한 번 소독할 때만 열린다는 지하실까지 몰래 내려가 칼을 휘두르다 한문선생 인표에게 딱 걸립니다. 인표에게서 강한 정신력과 사랑으로 형성된 오로라 같은 보호막이 은영의 눈에 보이고 인표의 손을 잡으며 은영은 에너지 충전을 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그냥 은영의 이동식 배터리랄까,,,ㅎㅎ
지하실에 봉인된 연못 생물 악령이 풀려나게 되어 학교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은영은 인표와 콤비를 이루어 무사히 처리를 하게 됩니다. 그 후 놀토마다 은영과 인표는 명승지를 찾아다니며 은영의 기운을 충전하고 손을 잡고 주거니 받거니 하죠.
'보건교사 안은영'은 한 가지 이야기가 책 한 권 내내 이어지진 않아요. 여러 에피소드들이 모여 있어서 중간중간 읽어도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통통 튀는 캐릭터들과 지루할 틈 없이 펼쳐지는 여러 사건들에 푹 빠져 한자리에서 다 읽었네요.
기존의 주인공과 안은영의 다른 점은 은영이 모든 사건을 다 해결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은영이 해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들 스스로 해결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냥저냥 흘러가듯 은영과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흘려보내기도 합니다.
혜현과 승권.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죽은 아이.
붙어있으면 사건이 터지는 럭키와 혼란.
은영의 친구 강선.
환생을 48번 했는지 49번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생에 그렇게 애착이 없던 옴잡이 소녀.
은영의 라이벌 매켄지.
귀신이 보인다는 레이디버그 레이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중 강선의 이야기는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목숨보다 크레인이 비싸서 목숨을 잃게 된 강선.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에 숨겨져 있는 우리 주변 어디서나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그런 이야기라 더 가슴이 아팠네요.
소재가 너무 신선했고 황당하지만 귀엽고 재미있었습니다. 무겁고 호러스러울 수 있는 주제를 귀엽게 젤리로 풀어간 건 정말 신의 한 수였어요. 정세랑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코로나로 매일매일이 똑같아 우울한 요즘.. 통통 튀는 안은영과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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